몇 년째 마음만 먹고 몇 번을 실패했던 그릇정리가, 9월이 되니 '이제 가을이구나'라는 생각에 왠지 단호박처럼 단호해져서 손에 닿지 않는 곳에 처박아두다시피 했던 그릇이며 유리잔이며 오래된 반찬통들을 꺼내 다 내놓았다.
이렇게 후련한데 그동안 정리하지 못했던 것은, 아무래도 결혼하며 마련한 첫 주방살림이라는 의미와 이유가 컸지?
예뻐서, 멋있어서 구입한 신혼 그릇은 딱 신혼일 때만 좋았던 것 같다. 처음 산 소파도 그랬지. 아담하고 동그란 베이지와 카멜브라운 배색의 디자인 소파. 막상 앉으면 등을 편히 기대기 어렵고 엉덩이 닿는 쿠션이 금방 꺼져버렸던... 10년이 지나도 여전히 잘 샀다고 생각되고 잔 고장 없이 사용하는 것도 있으니 조금은 위로가 되지만.
처음부터 모든 것을 잘 고를 수 있다면 매우 좋겠지만, 잘 못 고르는 게 사실 더 많다. 안 써봤으니까. 당연하지 않을까? 어느 정도는 매일같이 써봐야 쓸 때 뭐가 편해야 하는지 디자인과 실용적인 부분을 어느 정도에서 맞출지 등 취향을 발견하게 되니까. 나와 남편과 딸의 취향이 골고루 버무려지는 기간도 필요한 거지. 물론 주방 쪽은 압도적으로 내 취향이 우선이다. 하하하.
일단은 제가 음식하고 차리고 치우니까요. 그 정도 권한은 주셔야 한다고 봅니다. 네. 그렇죠.
마음을 온전히 먹기까지 긴 시간이 들었지만, 조그만 변화가 시작되면 다른 부분들은 처음에 걸린 시간보다는 조금 더 빠르게 갈 수 있다. 그릇이라는 카테고리를 정리해 냈으니 25년의 9월 가을은 모둠 정리의 달로 정해볼까나. 하나씩 하자. 하나씩.
:)